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덴마크-노르웨이 왕국 (문단 편집) ==== 덴마크의 슐레스비히 병합 ==== 이와 별도로 프레데리크 4세는 그동안 스웨덴이 보여주었던 홀슈타인-고토르프 공국에 대한 지원을 완전히 차단하는 성과를 거뒀다. 스웨덴도 울리카 엘레오노라가 즉위하는 과정에서 홀슈타인-고토르프 공작 카를 프리드리히가 자신의 스웨덴 왕위계승권을 주장하며 반발했기 때문에 그를 반란자 취급하며 앞으로는 지원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. 이에 프레데리크 4세는 그동안 홀슈타인-고토르프 공작이 덴마크 왕들과 함께 공동으로 겸하고 있던 슐레스비히 공작 지위를 박탈하고 슐레스비히를 공식적으로 덴마크의 영토로 병합했다. 다만 홀슈타인은 공식적으로 독일에 속했기 때문에 프레데리크 4세도 이를 박탈하지는 못한 채 공식적으로는 카를 프리드리히와 공동 작위로 유지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홀슈타인도 지배하기 시작했다. 이후 카를 프리드리히는 [[러시아 제국]]으로 망명을 떠났고 표트르 1세의 딸인 안나 페트로브나와 결혼하였다. 둘은 AD 1727년이 되어야 홀슈타인-고토르프 공국의 [[킬(독일)|킬]]으로 돌아왔다. 그리고 이듬해 안나 페트로브나는 아들 카를 페테르 울리히를 낳고 사망하지만 카를 페테르 울리히는 모계 혈통에 따라 훗날 러시아 제국의 황제 [[표트르 3세]]로 즉위한다. 또한 카를 프리드리히는 스웨덴의 왕위 계승에는 실패했지만 스웨덴의 프레드리크 1세가 AD 1751년 적장자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자 카를 프리드리히의 5촌 당숙인 [[아돌프 프레드리크]]가 스웨덴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. 이로 인해 홀슈타인-고토르프 공작 가문은 가문의 영지 자체는 대부분 상실했지만 러시아와 스웨덴의 왕위를 이어받는 형태로 유럽의 대표적인 왕가 중 하나가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